1. 기무사의 윗선은 황교안 박근혜다

23일 어제,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원회에 '전시계엄 엄무 및 합수업무' 즉 기무사 계엄령 세부문건을 공개했다. 앞서 공개된 문건이 계엄령에 대한 계획이라면,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실무자료 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의 상세한 내용을 담고있다. 문건에 담긴 '국방부 비상대책 회의' 는, 합참의장, 육군총장, 기무사령관, 특전사령관, 수방사령관, 정책실장 등의 군의 상층부와, 당시 박근혜 정부 요직의 인물들이 참석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2016년 시민들에 의해 실패로 돌아간 터키 쿠데타를 예로 들어, "계엄선포 후 언론보도 등으로 보안누설시 시민에 의한 계엄군 진압 여부가 계엄 성패와 직결" 이라며, 계엄령 선포 보안유지에 중점을 두고 박근혜 정부와 기무사가 쿠데타를 기획했다. 또한 "계엄사령관을 계엄사 작계에 의해서 육군총장으로 임명해도 문제없음", "전국 계엄의 경우 대통령의 지휘 감독 및 계엄군 지휘통제 등을 고려하여 선정" 을 통해, 기무사가 합참을 배제하고 육사중심의 쿠데타를 기획했음이 밝혀졌다. 

터키 쿠데타를 예로 드는 기무사

합참의장을 배제하고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추대하는 기무사

터키와 같은 "시민들에 대한 계엄군 제압"을 방지하기 위해, 기무사는 비상계엄 선포시 "보도매체 및 SNS 통제"를 연이어 적용하려고 했음이 드러났다. 

계엄사는 보도검열단을 방송 신문등 9개반 48명을 동원하고, 매체별 통제요원을 운용할 계획을 세웠다. 계엄사는 "불필요 내용 보도 및 유언비어 확산 차단" 을 위해 조간신문은 매일 05:00~12:00시, 석간신문은 매일 15:00~22:00, 인터넷은 '수시'에 사전검열을 할 세부계획을 마련해, 국민의 눈과 귀를 막을 방법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준다. 또한 보도검열에 따르지 않을 매체는 3차에 걸처 보도검열 지침을 준수하도록 유도하고, 계엄법을 통한 3년 이하의 형사징역과, 외신매체에는 강제출국으로 매체들을 장악할 계획을 세웠다. 최종적으로 계엄사는 'KBS1 TV 및 라디오'로의 단일 방송 체계로 전환과 보도 단일화를 계획했다. 

기무사의 윗선은 황교안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대통령의 결재

기무사는 사실상의 쿠데타를 기획했다. 여기에는 우리에게는 비교적 친숙한 '대통령 권한 대행' 도 등장한다. "기무사의 쿠데타 계획"의 윗선에 대한 수사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이다. 평화적인 촛불집회가 계속될 무렵에도, 박근혜 정부의 요직들과 군이 비밀회담을 하고, 시민들의 언론의 자유를 통제하고 진압할 계획을 세웠다. 기무사의 윗선은 황교안과 박근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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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

독재자 이승만을 몰아낸 4.19혁명이 있고난 1년후 1961년, 육군 소장 박정희와 김종필을 비롯한 대한민국 육군은 무능한 민주당과 어지러운 정국을 바로 잡는다는 명목으로 군사 쿠데타를 감행한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3시, 박정희 소장은 한강철교를 넘었고, 민주당 장면 총리는 머물던 반도 호텔에서 벗어나 수녀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서울시내에 입성한 박정희일당은 김종필을 시켜 중앙방송국을 장악하고 혁명공약을 발표한다.


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오늘 아침 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해,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서 군사혁명 위원회를 조직했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이 이상 더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김종필은 2011년 인터뷰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한다.


“혁명 같은 걸 해서 제일 먼저 확보해야 하는 것은 방송국이야. 방송하는 것뿐 아니라 송신소도 장악해야 해, 그래야 왜 혁명했는지를 알릴 수 있지. 별도로 송신소 장악팀도 있었어. 대중의 공감대를 확보하는 게 일의 성패를 좌우하는 거야.”

(http://news.joins.com/article/548663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일당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정통성 확보를 위해 반공을 국시로 삼고, 내부단속을 강화했으며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짓밟혔다.


5월 20일, 중앙청에서의 박정희









혁명군의 모습














2. 기무사의 촛불무력진압과 통행금지령

박정희가 사망한 1979년으로 부터 39년이 지난 지금의 정국은 '기무사의 촛불 무력진압' 으로 떠들석 하다. 여전히 군은 박정희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것이다. 앞서 군 인권센터에서 공개된 '전시계엄 및 합수엄부' 문건을 통해 기무사는 기계화부대를 동원해 광화문 광장의 촛불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 할 계획을 세움이 드러났다.


"기무사의 촛불 무력진압" 그날 기무사는 제2의 5.18을 꿈꿨다

http://luminous-society.tistory.com/18?category=628045


언론들의 연이어진 보도를 통해, 기무사는 계엄을 선포한 후, 계엄사령관에 합참의장 대신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인물들을 앉히려고 했음이 들어났고,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인물들이 계엄사를 이끌도록 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기무사는 계엄을 선포하는 동시, 야간통행금지를 선포해 밤 11시 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도록 했다는게 밝혀졌다.


[단독] 기무사, 계엄령 동시 '야간통행금지'도 계획

http://v.media.daum.net/v/20180722153158113?rcmd=rn

비상계엄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의 표결을 통해 해지할 수 있고,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국민 대다수의 의사에 반하는 계엄은 쉽게 해지 될 수 있다. 하지만 기무사는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에서, 국회에 장갑차와 다수의 무장병력을 배치할 계획을 세운것이 드러났다. 또한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어제자 브리핑에서 "불법시위 참석 및 반정부 정치활동 의원 집중검거 후 사법 처리해 의결정족수 미달을 유도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며 기무사의 야당 국회의원 체포 계획을 밝혔다. 기무사는 촛불 무력진압을 통해 국회를 장악하려고 했다.


3. 쿠데타 계획 문건 아니라는 자유한국당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의 의원들은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계획 문건으로 정치공세를 벌였다. 자유한국당의 이은재 의원은 송영무 장관에게 기무사 문건을 아무리 봐도 국가 전복 음모 같은 건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데, 그렇죠? 허위사실 유포고, 군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보이죠? 어떻습니까? 라며 기무사 문건을 실제 계획으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낸 자유한국당의 김영우 의원은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기무사 해체주장은 좌파들의 소설쓰기 일환입니다. 기무사가 작성했다는 문건 그 어디를 봐도 계엄령을 발동해 정권을 탈취하겠다는 쿠데타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라며 기무사의 쿠데타 의혹을 문재인 정부 혹은 좌파들의 난동 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이은재 의원과 김영우 의원 모두 당시 박근혜 탄핵소추안에 찬성의견을 보였다.

비박계 33명 “탄핵 찬성” 재확인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773971.html

바른미래당은 청와대의 기무사 추가 문건 브리핑을 "최근 최저임금 문제로 대통령 지지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정치적 술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라며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공세를 계속한다. 새누리당의 '비박계' 들이 창당한 바른미래당에서도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을 부정하는 태도는 여전하다. 계엄령이 기무사의 계획대로 선포되었다면, 예비검속의 1순위가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다고 알려져있다. 그렇다면 당시 탄핵을 찬성한 새누리당의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은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통해 국민들을 현혹시킨다. "기무사의 촛불 무력진압" 의 책임은 박근혜 정부와 기무사 뿐만 아니라,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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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는 제2의 5.18을 꿈꿧다


촛불 무력진압, 사실로 드러나다.

서울 시내 탱크 200장갑차 550무장병력 4,800특전사 1,400명 투입 계획 -

2018/07/05 - [시사뉴스] - 기무사 "촛불 정국 공수부대 투입... 문건 나와.."

2018/07/06 - [시사뉴스] - "기무사의 촛불 무력진압" 3대 핵심 의혹 정리


http://mhrk.org/news/?no=5224&PHPSESSID=b4d093eab55ca7168bf605f80476254d


기무사는 꼼수를 이용해, 

정부수반을 장악하고, 입법부를 무력화 시킨뒤

친위쿠데타를 계획한 것으로 의심된다.



계엄발령 시 서울 시내 병력 배치도이다.

KBS, 내곡동 국정원, 청와대, 여의도 국회, 광화문과 같이

서울 시내 주요 길목 마다 다량의 무장병력을 배치하려고 했다는것이 주요 골자이다.


2015년 민중총궐기 때의 모습이다.

단순한 집회 진압의 목적이라면, 차벽과 물대포를 설치하고

경찰력을 배치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기무사는 탱크와 특전사, 그리고 기계화 부대를 서울시내에 배치할 계획을 세웠다.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 합리적인 의심을 해보자.


1. 2016 터키 쿠데타 미수 사건


2016년 터키 쿠데타 미수는 2016년 7월 15일에 발생한 터키의 쿠데타 시도이다.

터키 군인들은 15일 밤 (현지시간) 국영 TRT TV 방송을 통해 수도 앙카라와 최대 도시 이스탄불의 주요 국가시설들을 장악했으며, 권력을 확보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군인들은 성명에서 평화 의회가 이제 국가를 운영하고 있으며 군법에 따라 야간 통행금지령을 내린다고 발표했다.[4] 또한 한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독일 망명을 타진하고 있다고 MSNBC가 미군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하였다.[5]

그러나 현지 시간 2016년 7월 16일 오전부터 터키 군중이 앙카라 이스탄불 광장에 집결해 쿠데타 세력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과 친정부 세력이 상황을 타개하여 군부의 쿠데타 시도는 실패로 귀결되었다.[6]

위키백과 '터키 쿠데타 밀수 사건' 항목에서


2016년 터키의 쿠데타는 실패로 끝이 났다. 왜일까?



쿠데타의 목적이 달성되기 위해서는 미디어가 필요하다.

하지만, 터키의 군부는 국영 방송사의 장악에 실패하였고,

결국 친정부군의 진압에 쿠데타 시도는 삼일천하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터키 군부는 동시 다발적인 시내 점령 대신,

'탁심 광장' ( 터키의 광화문) 점령에만 관심을 두어,

진압군에게 길을 내주고 말았다.


쿠데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진압군을 막는것이 가장 큰 관건이다.

그렇다면 기무사는 어떤 방법으로 쿠데타를 기획했을까?


2. 광주학살의 주범인 11공수여단으로 광주를 장악


기무사는 서울 시내 장악만을 꿈꾸지 않았다.



육군 기계화 사단과 공수 여단을 이용해 주요 도시를 장악하려는 기무사(계엄사)는

광주에는 11공수여단을 투입할 계획을 세운다.


광주에 11공수여단이라고?

11공수여단은 광주학살의 주범이며 광주시민의 아픔의 역사.

하지만 기무사는 광주에 11공수여단을 계엄군으로 투입할 계획

기무사는 5.18을 꿈꿧나?


이명박근혜 정부의 기무사의 만행은 끝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기무사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불법적으로 사찰했다.

심지어 사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유가족들의 성향을 분석했다.



기무사와 군의 정치적 개입을 막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은 군 개혁으로 부터 시작된다

특검도 불사해야만 한다

정치권의 지속적인 관심이 절실히 요구된다

하지만 주요 미디어는 보도를 하지 않는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이 필요하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군은 70년대 사고에 멈춰있다.

5.16의 망령이 여전히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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